자연의 일부로써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상은 동양사상에서의 인간상이고, 자연에 대항해서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상은 서양사상에서의 인간상이다. 현대인들은 사양사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오고 있기 때문에, 자연의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인간의 모습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하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에는 마냥 공감하기가 힘들게 되어 있다.
신(神)과 자연을 보는 관점 또한 다른데... 예전에 동양사상과 설화를 연구한다던 어떤 블로거는 희안하게도 디워에서 등장한 이무기가 곧 자연을 뜻한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무기는 신(神)(그 블로거의 표현을 빌자면, '졸라 킹왕짱 센 존재')이고 동양의 설화는 그것을 서사에 융합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주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동양사상을 공부하고는 있지만, 아직 이해의 수준까지는 가지 못해서 그런 주장이 나왔다고 본다.
서양사상의 틀에서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에서, 자연에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서사에 융합시키는 것에 노력을 들일 필요가 별로 없듯이, 동양사상의 틀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서사에 융합시키는 데에는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인데, 동양사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동양의 설화를 이해하려다 보니 그런 주장이 가능하지 않았나 한다.
디워는 이무기설화의 서사를 따온 것이라서 동양사상적 자연관과 인간관이 서사에 그대로 포함되어 있고, 그것을 접하는 서양사상의 틀에 사는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꽤나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뭔가 설명이 빠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단지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차이에서 오는 위화감일 뿐이지, 디워의 서사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없이 그 위화감의 원인을 나름대로 아무리 분석해봐야 헛다리 짚는 꼴 밖에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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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잉은 결정론적 운명, 자연 앞에 한없이 무력한 인간, 신적인 존재에 의한 구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운명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모습이 전제로 깔려있지만, 결론적으로 자연과 신 앞에 순응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정통적인 서양사상적 인간관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전통적인 서양적 이야기라면 주인공이 코드의 비밀을 알아내서 지구의 멸망을 막는다던지, 신적인 존재가 자연이 인류를 멸망시키도록 내버려 두는게 아니라 직접 자연을 제어하거나 대항해서 인간을 구원하거나 멸하는 종교적 해결이 났을 것이다.
자연의 힘을 최대한 인정한다 하더라도, 영화처럼 몽창 다 죽어버리는게 아니라 최소한 열심히 노력한 주인공은 살아나는 걸로 자연의 섭리를 애써 외면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노잉은 서양사상적 인간관의 멍청함을 자성하는 영화라고 본다. 인간이 안다고 설쳐봐야 자연 앞에서는 소용없고, 자연에 아무리 대항해봐야 소용없고 그래서 노잉은 죽음마저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인간은 그저 자연의 일부고, 신 또한 자연 그 자체이거나 자연의 일부다.
관객들이 노잉을 통해 서양적 인간관의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성을 하기 보다는 영화의 서사를 탓하는게 일반적인 우리네 관객들의 모습이다. 샤말란의 '헤프닝' 또한 자연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다루고 있어서 서사 탓하는 관객들이 꽤 있는걸로 아는데, 최근 헐리우드 영화 조차 이 정도의 서양사상적 인간관에 대한 자성을 이야기 하는 수준에 오른 것에 비해서 아직 우리 관객들의 수준은 예전의 전통적인 서양적 서사에서 벗어날 줄을 모르는 것 같다. 동양인 임에도 일부 서양인들 보다 더 서양사상적인 틀에 갖혀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그 원인에는 우리 개개인의 사상적 편협함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고, 일부 몰지각한 지식인들의 편협하고 고루한 지식에 입각한 가르침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이럴땐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게 더 낫다.
슈퍼플레어로 지구가 몽땅 불바다가 되는 상황은 인간의 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인간은 거기에 대항해서 발버둥 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나이가 들어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인데, 생명을 연장하려고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슬프면 눈물이 나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슬프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자연이 바로 스스로 그러한 것인데,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이 과학적으로 증명해낸 것들이다 보니, 자연의 섭리를 따르면 전혀 안생길 문제가 과학에 의해 오히려 많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잉은 서양적 관점에서 서양적 인간관을 자성하고 있고, 디워는 동양적 서사라서 동양적 인간관이 그대로 들어있다.
만약 이 두 영화의 서사가 비슷한 느낌으로 엉망(진중권의 말을 빌자면 "서사도 아닌 것")으로 다가온다면, 그 사람은 서양적 인간관에 대한 맹신이 작용하는 관객일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 같다.